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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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義)’ 그리고 ‘사사로움’을 생각하다
최병일 소방청 차장
▲ 최병일 소방청 차장    

중국 서한(西漢)시대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글에 ‘의무반고(義無反顧)’라는 말이 있다.

의로운 일이라면 사사로움은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지난 6월 이천의 대규모 물류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해 구조대장이 순직하고 5일 만에 화재가 진압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합동 화재안전 종합대책을 추진하면서 우리 시대 안전에 관한 ‘의(義)’와 ‘사사로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12만7천178㎡의 거대한 물류 시설은 화재 확산을 차단하는 방화구획이 사실상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높은 층고에 꽉 들어찬 적재선반은 진압대원들이 방수한 물이 불까지 직접 도달하는데 장애물이 됐다.


고온에 노출된 철제 선반이 힘을 잃고 무너졌고 켜켜이 쌓여있던 각종 가연성 상품 속에 남아있던 불씨가 커지면서 진화되는 듯 했던 화재는 다시 급격히 번졌다.


다시 살아난 화세에 긴급 대피하던 구조대장은 안타깝게 순직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재정비하고 현장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은 동료를 잃은 슬픔마저 억누르게 했다.


약 60일 간의 조사 끝에 밝혀진 화재 원인은 이번에도 역시 ‘안전불감증’이었다.

화재 당시 경보음이 울렸지만 오작동이라 생각한 관리자는 소방시설의 작동을 6번이나 차단했다.


때문에 일부 스프링클러 작동시간은 10분 이상 지연되어 화재 확산을 차단하지 못했다.

결국 소방안전관리 위탁업체와 업체 직원들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그러나 처벌만으로 재발을 방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전국에 산재한 2100여 개 물류시설에 대한 철저한 대책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화재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이다.

대규모 물류시설의 특성에 맞는 특수감지기와 대량 방수가 가능한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물류센터 화재안전기준’ 제정이 추진 중이다.


관련부처와 협의를 통해 층별·면적별 방화구획 기준을 더 명확히 규정하고 ‘물류창고업 안전관리기준’을 신설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전기화재 예방대책 강화 방안도 마련 중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대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형 물류센터를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하고, 물류센터 밀집지역을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해 종합적인 화재안전계획 수립을 의무화하고 소방특별조사를 강화할 것이다.


또 물류센터의 특성에 맞으면서도 현장의 작업자들이 쉽게 이해 및 이행할 수 있도록 그림·사례·QR코드를 활용한 ‘물류시설 화재안전 관리 매뉴얼’을 마련할 예정이다.


세 번째는 물류시설에 특화된 화재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형 물류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를 가정한 유형별 대응 시나리오 및 기법을 개발 중이다.


현장지휘관의 지휘역량을 높이기 위한 ‘현장지휘관 자격인증제’도 도입된다.

또 건축 허가·설계 단계부터 소방차량과 진압대원의 소방활동에 필요한 공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건축심의 제도를 개선하고 물류시설의 소방시설이 그 특성에 맞게 설계될 수 있도록 성능위주설계 심사지침을 마련할 것이다.


이와 함께 충분한 소방용수 확보를 위해 수도정비기본계획 수립 시 물류시설을 급수구역에 우선적으로 포함하도록 관련 지침 개정을 논의 중이다.


이같은 ‘화재안전 종합대책’의 제도개선 사항은 내년 상반기까지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고 이해관계 충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안전’은 이 시대의 ‘의(義)’이고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이해관계 충돌은 우리가 얽매이지 말아야 할 ‘사사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의무반고(義無反顧)’의 자세로 이번 대책을 적극 추진하겠노라 다짐하면서, 또 다시 이번 화재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사입력: 2021/09/03 [19:35]  최종편집: ⓒ safe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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