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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은 조선시대 소방관 ‘금화군’ 창설일
우리나라 첫 소방관 ‘금화군’ 창설일 기념로고 네이버에 게시
박찬우 기자

소방청513일 우리나라 첫 소방관인 금화군 창설일자(1431513)에 맞춰 스페셜로고를 네이버 첫 화면에 게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 첫 소방관인 금화군의 첫 발걸음을 재조명하기 위해 네이버의 스페셜로고 처음 프로젝트’*와 협업하게 되었다.


* 누군가의 새로운 생각과 도전으로 맞이하게 된 첫 순간들. 그 순간을 돌아보고자 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20163월부터 현재까지 네이버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이번 스페셜로고는 금화군 창설일에 맞춰 우리나라 첫 소방기관인 금화도감의 탄생과 창설 배경, 기관설치를 위한 세종의 노력 등이 웹툰으로 제작됐다.


5130시 기준으로 네이버 메인로고에 게시되면 해당 이미지 클릭 시 상세내용을 확인 할 수 있도록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금화도감과 금화군의 유래를 재미있는 웹툰으로 확인해 보고 옛 선조들의 안전을 위한 노력들을 되새기며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네이버 스페셜로고처음 프로젝트201663우리나라 첫 119구조대 발족기념 로고가 게시된 바 있다.


 

네이버 소방관련 스페셜 로고

 

 

 

우리나라 첫 소방관 금화군 창설일(1431.5.13.) 스페셜로고, 게시일 2020.5.13.

 

 

                          우리나라 첫 119구조대 발족(2016.6.3.)

 

 

금화도감 설명자료

 

금화도감은 세종 8년인 1426226일에 방화업무(防火業務)를 총괄하는 기구로 설치되었다.

 

이조에서 세종대왕에게 보고하기를


"도성 안에 금화(禁火)의 법을 전장(專掌)한 기관이 없어 거리에 사는 지각 없는 무리들이 주의하여 잘 지키지 못하고 화재를 발생시켜, 가옥이 연소되어 재산을 탕진하게 되오니, 백성의 생명이 애석합니다.


따로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여 제조(提調) 7, (使) 5, 부사(副使)와 판관(判官)6명씩으로 하고, 제조 7명 중에 병조 판서와 의금부 도제조가 삼군(三軍)의 우두머리가 되고, 도진무(都鎭撫)와 군기감(軍器監)이 우두머리 제조(提調)가 되게 하여,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실제 사무를 맡고, 그밖의 2명은 때에 따라 임명할 것이며, (使) 5명 중에 의금부가 우두머리가 되게 하고, 진무·군기 판사(軍器判事선공판사(繕工判事사재판사(司宰判事)를 이에 임명하며, 부사(副使) 6명 중에 삼군의 호군과 사복이 우두머리가 되게 하고, 소윤과 월차소(月差所)가 우두머리 호군이 되게 하며, 판관 6명 중에 병조와 무비사(武備司)의 정랑으로 하는데, 공조가 우두머리 정랑이 되게 하되, 한성부의 판관을 임명하는 것으로 일정한 규례를 삼고, 그 나머지는 구전(口傳)하여 상설 기관으로 하고 폐지하지 말아 화재 방지하는 것을 사찰하게 하소서."

 

금화도감이 설치된 배경에는 한양 도성을 건설하고 천도한 이후 대형화재가 빈발하고 특히 불을 내고 재산을 훔치는 화적(火賊)들이 많아 피해가 극심해 특별대책이 필요했다.

 

앞서서 세종 5년인 1423년에는 오늘날의 소방법과 비슷한 금화조건(禁火條件)을 병조에서 만들어 건의해 시행하고 경계도 강화했지만 대형화재는 줄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세종 8년인 1426215일 한성부 남쪽인 인순부에 사는 노비 장룡의 집에서 불이나 경시서(京市署) 및 북쪽의 행랑 116간과 중부(中部)의 인가 1630호와 남부의 350호와 동부의 190호가 연소되었고, 인명의 피해는 남자 9, 여자가 23명이었는데 완전히 소사한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도 않았을 정도가 피해가 컸다.

당시 마침 지방 순행 중이던 세종대왕은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급히 환궁하여 화재대책과 화재민 구호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이에 세종은 220일에 명령을 내려 "서울의 행랑(行廊)에 방화장(防火墻)을 쌓고, 성내의 도로를 넓게 사방으로 통하게 만들고, 궁성이나 전곡(錢穀)이 있는 각 관청과 가까이 붙어 있는 가옥은 적당히 철거하며, 행랑은 10간마다, 개인 집은 5간마다 우물 하나씩을 파고, 각 관청 안에는 우물 두 개씩을 파서 물을 저장하여 두고, 종묘와 대궐 안과 종루의 누문(樓門)에는 불을 끄는 기계를 만들어서 비치하였다가,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곧 쫓아가서 끄게 하며, 군인과 노비가 있는 각 관청에도 불을 끄는 모든 시설을 갖추었다가,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각각 그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가서 끄게 하라." 고 했다.

 

그리고 방화범 색출과 처벌을 더욱 강력히 하여 극형에 처하도록 병조에 지시하여 시행하였다. 또한 226일에는 의정부와 6조의 대신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화재대책을 논의하였다. 229일에는 초가집 화재대책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기와집으로 교체하기 위해 기와생산을 위한 별요(別窯)를 설치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후 어느 정도 화재대책이 성공을 거두자 1426619일에는 효율적인 조직관리를 위해 도성수리와 하천관리를 담당하던 성문도감(城門都監)과 금화도감(禁火都監)을 통합하여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을 설립해 성을 수리하고 화재를 금지하며 천거(川渠)를 소통시키고, 길과 다리를 수리하는 따위의 일을 전담토록 했다.

 

이후 수성금화도감은 업무량에 따라서 일부 소관기관을 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481(성종 12) 3월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도둑질을 위한 방화가 많아지자 금화도감을 다시 부활하자는 논의가 일어나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로 격상시켜 경국대전에 법제화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소방관처럼 화재진압업무를 전담하는 군사를 멸화군(滅火軍) 또는 구화군(救火軍)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조선시대 내내 계속 존속되었다.

기사입력: 2020/05/12 [13:52]  최종편집: ⓒ safe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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